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조 히데키 (문단 편집) ==== 부하 ==== >'''"병사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입대한다. 귀관들은 이들을 아버지처럼 자애롭게 대하고, 나이가 많은 병사들에게는 형으로 대하도록 명령해야 한다. 그리고 입대하는 자의 가정환경, 본인의 직업, 능력을 모두 알아두어야 한다. 귀관들은 전역하는 그날까지 중대의 신병의 이름을 기억하라. 왜 그래야 하는가. 병사는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저승길을 갈 동료이기 때문이다."''' >---- >1929년 4월 제1사단 보병 제1연대장으로 부임한 후 부하들에게 훈시한 내용. 일반 병사나 부사관, 하급 장교들에게는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 같은 상관이었다. 도조는 신병이 들어오면 일일이 부모를 찾아 뵙고 "귀한 자식을 맡겨주셨으니 끝까지 보살피겠습니다."라며 부모와 입대하는 자식 모두를 안심시켰고 형편이 어려운 가장이 입대하면 [[동사무소]]를 통해 생계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불안을 해소해 주었다. 게다가 도조는 [[평등주의]]에 철저하여 [[식사]]도 사병과 같은 것을 먹었다. 이건 그 당시 일본군 장군들로써는 굉장히 이례적인 반응이다. 특히 같은 [[군국주의]]자 항목의 [[하나야 타다시]]와 비교해도 훨씬 나은 대접이다. 항목 참조하길 바란다. 부하들을 어찌나 사랑했는지 한 번이라도 다른 반찬이 나오면 병사들의 식단에도 그 반찬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는 만약 없을 경우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조의 부대는 밥을 잘 주는 편이었다고. 게다가 부하에 대한 배려가 깊어 사단장 시절에는 병사들과 부사관들의 건강과 가족사항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이름을 외웠고 부하인 부대장들에게도 병사들의 신상명세와 집안 사정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그 부하들 중에 부모가 위독하다거나 집안에 큰 우환이 있을 경우 [[사단장]]의 권한으로 [[전역증]]도 발급했다고 한다. 부대 훈련 때도 도조는 군 생활이 병사들에겐 평생 남는 기억이 된다며 체력이나 전투 기술이 부족한 병사들에겐 핸디캡을 적용하여 훈련에 낙오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심지어 시골 출신 병사가 도시 출신보다 면역력이 약해 [[결핵]]에 걸리기 쉽다는 [[군의관]]의 조언을 듣고 결핵 검진을 위해 당시(1920년대)로선 최신 기술인 [[X선]] 장비를 '''즉석에서''' 도입하기도 했다.[* 흉부 엑스레이는 지금도 결핵 검진에 유용하게 쓰인다.] 또한 야전 부대장 때는 물론이고 총리 재임 시절에도 관저의 임원들과 [[수상관저]]를 지키는 병사들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며 운동회와 보물찾기도 열었다고 한다. 심지어 도조의 운전기사 역시 "총리 각하만큼 훌륭하신 분은 진짜 처음 봤습니다."라고 증언했다. 만약 도조가 총리까지 지내지 않고 그냥 사단장 등 야전 지휘관이나 헌병사령관 정도에서 퇴역을 했더라면 후세에 욕 먹는 일 없이 부하를 생각하는 훌륭한 지휘관으로 기억됐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